베시 엘라인 핵심 서사. 

     

    사실적인 가정폭력 묘사, 자학, 직간접적인 살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. 
    위 사항들을 주의하여 열람해 주세요. 



     
     
     
     
     
     
     
     너 그거 병 째로 마시는 거야?
     
     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나 베시 엘라인의 턱을 타고 내려와 있었다.
    입을 닦아낼 겨를도 없이 괴롭게 얼굴을 붙잡자 그는 손으로 주위의 연기를 무산시키며 물었다.
     힘이 빠져 병을 내려놓을 때까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. 세 개비의 담배만 피우고 갈 거라던 그가 네 번째 담배를 꺼내고, 술이 반 정도 남은 내 유리병을 가져갈 때까지도 그가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.
     
     이거 다 못 피우면 못 들어간댔어. 어쩐지 네게서 동질감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. 나처럼 교복을 입은 그는 그 뒤로도 무어라 말을 이어갔다. 그 소리가 멀었다.
     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취기는 무방비한 지, 발음을 뭉그리던 그의 고개가 내 쪽으로 기울었다.
     그리고 나는 입을 맞췄다.
     것도 모르고 내 품에 푹 가라앉는 이 취기 어린 머리가 가여웠다.
     나는 그의 감긴 눈꺼풀에 대고 물었다. 너도 외로워서 그렇지. 너도 타인을 믿지 못하지. 이 꼴로 다니면 강간이나 당할 거라는 소리를 듣지. 나가 죽으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렇게 연명하잖아. 너도 그런 거지. 입을 맞출 때와 다름없는 눈길이었다.
     
     그 소리를 입으로 주워 먹다 보면 유독 탈이 났다. 과식으로 변기에 모두 게워내는 날도 있었다.
     내 속에 이만한 위액이 들어있었나. 음식 따위를 공급받지 못한 몸은 끝내 여윈 살을 쥐어짜 위액을 끄집어내기 일쑤였다. 내가 이만한 눈물을 흘릴 수 있구나.

     나는 숨을 몰아쉬며 변기물을 내렸다. 말라 터진 구순을 닦았다. 메마른 사람처럼 목을 긁어대고 신음했다. 나에게는 사랑이 필요했다. 걷어차여도 사랑이 필요했다.
     나의 허기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다. 그렇다면 나는 왜 사랑이 필요할까. 사람은 왜 사랑이 필요할까.
     
     사람은 왜 사랑이 필요할까.
     나는 변기 커버 위에 온갖 초라한 상념을 늘어뜨렸다. 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. 담배를 이만큼 피웠으면 사람 냄새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.
     
     아니지. 이건 사람이라서 풍길 수밖에 없는 냄새인가.
     
     뒤늦은 갈증도 있었지만, 내 얕은 정신을 깨운 건 물건이 깨부숴져 나는 소음이었다. 나는 문 쪽으로 기어가 고개를 바짝 기울였다.
     근원지는 거실이다. 살갗이 세게 부딪혀 터지는 둔탁한 소리가 이내 고함에 묻혀 들어갔다.
     내가 술을 마시는 걸 봤나. 출석을 빼먹었다는 연락이 기어이 간 걸까. 그런 생각조차 비명에 연신 파묻혔다.
     그럼에도 나는 몸을 물리거나 거슬림을 틀어막는 행동 하나 없었다. 평소보다 심한 충돌에 그저 귀 기울였다. 눈살이 더 없이 지겹게 찌푸려졌다.
     
     집을 나가버려야지.
     그런데, 내가 입 밖으로 말을 냈던가.
     욕실의 문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.
     
     나는 현실감 없는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.
     
     그리고 보았다.
     창문이 닫혀 폐색된 거실은 혈향이 보통 자욱한 게 아니었다. 그의 손에 들린 부엌칼과, 그것에서 떨어지는 빨간 피와 바닥을 삼킬 만큼 새빨간 여자가 엎드려 신음하는 것을 보았다.
     엄마가 꼭 저 자세로 누워있곤 했는데. 그런 생각을 하는데, 충혈된 눈이 나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.
     
     아무에게도 안 말할게. 내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. 괜찮아.
     내가 겨우 방에 들어가 문을 닫기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.

     숨 쉴 틈도 없는 외마디 비명이 이어졌다. 살이 무차별적으로 찍히고 튀는 소리를 괴성이 뒤따라갔다. 그제야 서서히 기어나오는 현실감을, 나는 문과 함께 걸어 잠갔다.
     골머리가 썩을 것 같아서 주저앉았다. 나는 다문 잇새로 호흡이 새어나는 것을 느꼈다. 땀이 절은 손에서 손잡이의 쇠비린내가 났다. 나는 머리를 감싸고 신음을 내지르면서, 잡히는 건 뭐든 잡아당겼다. 옷장 손잡이였을 지도, 근처에 있던 의자였을지도 모를 그것을 잡고 혼미한 정신을 억지로 일으켰다. 넘어진 몸 위로 쏟아진 책을 보면 책장이었을지도 모른다.
     
     어느 순간, 내 숨소리에 정신이 바로 들었다. 잔뜩 저린 팔이 아스팔트 도로에 늘어져 있었고, 내 앞에 세워진 차량을 포함해 사람들이 웅성웅성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.
     아무래도 내가 잡아당긴 건 창문이었던 것 같다.
     그 좁은 틈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. 아래로 떨어져 몸을 구른 것 따위 상관없었다. 코피가 터지고, 특정할 곳 없이 부러지고 잔뜩 까진 몸으로도 어떻게든 주위를 보려고 했다. 그러자 보호자의 손을 놓친 아이가 주저앉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.

     가장 앞에 선 행인이 초조하게 핸드폰을 꺼냈다. 나는 그에게서 몸을 뒤로 물리다 넘어졌다. 문득 속에서 뒤틀리는 경련에 구역질을 했고, 과호흡으로 파리한 그 안색을 두고 볼 수 없던 행인은 간헐적으로 떨리는 내 몸을 부축했다.
     
     소리가 멀었다.
     줄곧 울음이라고 생각한 비틀린 웃음이 비집어 나오고 있었다.
     그렇게 발작하듯이 비명을 지른 경험도 몇 안 된다. 눈이 가득 출혈되어 울면서,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일어서서 하는 소리가 고작 절규 따위라면 피할 만도 하다.
     여름 막바지였고, 나는 반바지를 입었고, 나는 찢기고 엉망인 꼴이 전부가 아니었다.
     방금 전 추락한 몸에 그렇게 많은 멍자국이 얼룩진다는 걸 납득할 성인이 없었기에, 너나 할 것 없이.
     
     나의 절망을 이해했다.
     
     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됐다.
     나는 너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. 바보 같았다.


     
     나는 왜 바보처럼 끝까지 네게 말하지 않았을까.

     
   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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